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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고산요 변호사 "소크라테스가 지하에서 울겠네"2024-10-18

현행법상 명예훼손은 여전히 범죄다. 거짓을 말해도 진실을 말해도 그저 명예훼손이 있었다는 것만 증명되면 일단은 범죄에 속한다.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2014년 헌법재판소도 이런 법규정이 합헌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소수의견을 낸 2명의 헌법재판관은 해당 법규정이 위헌이라 주장했다. 왜일까.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각자의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단순히 사실을 적는 것 혹은 자신의 견해만 밝히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대립이나 법적 분쟁이 일어나곤 한다. 이럴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바로 ‘명예훼손에 따른 고소’다.

우리나라 법제는 명예훼손에 관한 규정을 주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과 형법에서 다루고 있다. 만약 누군가 허위사실을 유포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마땅히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중요한 건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다. 이 경우에도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공공의 이익’이 인정된다면 위법하지 않다는 게 우리 법원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공익성은 없지만 사실을 적시해 부득이하게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게 된 경우는 어떨까. 과연 이 경우에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게 타당할까.

명예훼손죄, 징역형은 과도해

헌법재판소는 2014년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이 합헌이라 판단했다. 다만 당시 헌법재판관 2명이 소수의견으로 ‘위헌’이라 판단했는데, 그 근거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심판대상이 된 조항(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은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한다는 이유만으로 ‘진실한 사실’의 표현 행위를 지나치게 규제하고 있다. 둘째, ▲직접적인 반박문 게재 ▲게시글 삭제 요청 ▲민사상 손해배상 제기 ▲(언론보도와 관련해선) 정정ㆍ반론ㆍ추후보도 청구 등 형사처벌 외에 덜 제약적인 명예훼손 구제제도가 있음에도 징역형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한다. 셋째, 미국이나 독일 등에서도 ‘진실한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는 인정하지 않고 있고, 유럽평의회도 회원국에 명예훼손을 형사범죄로 다루지 말 것을 촉구해왔다. 따라서 ‘진실한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해도 이를 형사처벌하는 건 헌법에 위배된다는 게 소수의견의 논거였다.

민주주의는 사실에 근거한 다양한 의견을 표출함으로써 갈등을 평화적으로 조정하고, 토론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제도다. 또한 정보통신망의 발전은 다원적 민주주의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단지 ‘진실한 사실’ 적시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할 위험을 감수하라는 건 우리가 더 나은 사회로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스스로 제한하는 건 아닐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했던 말로 인해 사약을 받았다. 그리고 그 유명한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는 어쩌면 명예훼손이라는 틀로 우리 사회의 수많은 소크라테스를 죽이고 있는지 모른다. 명예훼손을 빌미로 고소가 남발하는 시대, 이제는 명예훼손죄에 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출처 : 더스쿠프